수원 화성행궁
쌀쌀한 가을
날씨
쌀쌀한 가을
바람과 함께 따뜻한 답사를 했다.
구경하고
볼수록 재미있고, 가이드 언니의 말을 듣고 화성에 대해 알수록 정말 궁금하게 됐고 왜? 언제? 어떻게? 라는
질문들이 저의 입속에서 자주 나오고 있었다.
수원화성 역사 속으로...
사적 3호인 수원화성은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2년 9개월 만인
1796년 9월에 완공한 성이다. 둘레가 약 5.7km, 성곽의 높이가 4-6m로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설계하였고, 석재와 벽돌의 병용, 화살과 창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가졌다. 200여 년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파손되었다. 그러나
축조 상황을 기록해놓은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여
1997년 12월 이태리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룡문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으로 1795년(정조 19) 건립하였다. 건축양식은 돌로 쌓은 홍예문 위에 단층문루를 세우고
밖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쪽이 열려 있는 옹성을 쌓은 구조이다. 이후 6·25전쟁으로 문루와 홍예가 크게 소실되었으나 1975년 다시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창룡문 왼쪽에는 축성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문 부근에는
연무대와 활터가 있다.
화서문
수원성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정조 20년(1796)에 완성한 성곽이다. 중국성의 모습을 본뜨기는 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을 쌓아 훨씬 발달한 모습을 하며 한국 성곽을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이다.
화서문은 수원성의 서쪽문으로 문의 모든 시설과 크기는 동쪽의 창룡문과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네모 반듯한 큰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축대 위에 1층의 건물을 세웠는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 건물이고, 축대의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과 문의 앞쪽에 벽돌로 쌓은 반달모양의 옹성이 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구실을 하며 2중의 방어 효과를 갖는다.
또한 주위를 돌아가며 총이나 활을 쏘는 구멍이 뚫린 낮은 담을 쌓아 보호되도록 하였다. 옹성의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공심돈이 성벽을 따라서 연결되어 있다. 공심돈은 속이 텅 비었다는 뜻으로 지금의 초소 구실을 하던 곳이다. 안에는 계단을 따라 오르내릴 수 있고 층마다 바깥을 향해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구멍이 있어 철저한 방어가 되도록 하였다.
한국의 다른 성곽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설로서, 구조도 특이하며 화서문을 중심으로 일대의 경치에 한층 더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화성행궁은 역사적인 가치 뿐 아니라
“대장금”, “해를 품은 달” , “왕의 남자” 등 화제의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화성열차를 타고 한국의 대표적인 노래 “아리랑”을 들으면서 화성 구경했다. 화성 열차 너무 마음에 들었다.
또 무예24기 공연을 재미있게 봤다. 공연 끝나고 인증셧 한 장 ~
또 무예24기 공연을 재미있게 봤다. 공연 끝나고 인증셧 한 장 ~
2013-10
주소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11(남창동 14) , www.sw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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